조직과 개인의 책임, 그 경계는 어디인가

요즘 사회 곳곳에서 ‘책임’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온다. 한 조직이 내린 결정의 결과를 누가 져야 하는지, 개인의 판단과 시스템의 결함은 어떻게 구분할지 고민하게 되는 사건들이 연이어 보도된다. 얼마 전 본 기사 하나가 특히 인상 깊었다. 한겨레의 보도를 보면, 서해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당시 상황에서 월북으로 판단한 것이 합리적이었다’며 관련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는 내용이다. 이 판결은 개인의 의사보다 조직의 판단 체계와 그 당시의 정보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게 한다. 실제로 나는 공공기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데, 상부의 지시가 내려오면 현장에서는 그 타당성을 의심할 시간도 없이 실행에 옮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구조 속에서 개인이 ‘합리적 판단’을 하기란 쉽지 않다.
정의: 책임의 분화와 귀속의 문제
책임은 크게 두 가지 층위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개인의 도덕적·법적 책임이고, 다른 하나는 조직이나 시스템이 지는 기능적 책임이다. 개인의 책임은 상대적으로 명확하다. 내가 한 행동의 결과를 내가 부담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직의 책임은 복잡하다. 여러 사람의 의사결정이 중첩되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의지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부문이나 대기업처럼 위계가 명확한 조직에서는 상명하달의 구조가 개인의 판단을 대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공무원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행동했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시한 상부에도 일부 귀속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이러한 논리는 독일의 ‘조직적 책임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법학자 클라우스 뤼더스는 조직 내에서 개인의 결정이 시스템에 의해 구조화된다고 주장하며, 책임의 분산을 강조했다. 실제로 2021년 한국행정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공무원의 67%가 ‘상사의 지시 때문에 부당한 업무를 수행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조직 구조가 개인의 윤리적 판단을 얼마나 압박하는지 보여주는 통계다.
예시: 서해 사건과 쿠팡-공정위 분쟁
서해 사건의 판결은 이런 복잡성을 잘 보여준다. 법원은 현장 지휘관이 당시 제한된 정보 속에서 내린 판단이 ‘비합리적이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이는 조직의 판단 체계 자체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반면, 매일경제가 다룬 쿠팡과 공정위의 법정 공방은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총수가 법인인가 개인인가’라는 쟁점은 조직의 의사결정을 누구에게 귀속시킬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쿠팡의 경우, 김범석 의장이 실질적 지배자임에도 법인이라는 우산 뒤에 가려져 개인 책임이 모호해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일상에서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학교폭력 사건에서 가해 학생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기보다, 학교라는 조직의 관리 체계나 예방 시스템의 부재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만약 이런 문제로 전문 자문이 필요하다면 학교폭력변호사와 같은 곳을 참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2022년 세월호 참사 이후 해양경찰청의 구조 시스템이 대대적으로 개편된 것을 들 수 있다. 당시 현장 지휘관의 판단이 문제 되었지만, 결국은 매뉴얼의 부재와 유관기관 간 협력 체계의 미비가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처럼 조직의 시스템 결함이 개인의 판단 오류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한 대기업의 윤리경영팀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임직원의 40%가 ‘회사의 방침 때문에 윤리적 갈등을 겪었다’고 답했다. 이는 조직 문화가 개인의 판단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책임의 귀속을 위한 프레임워크
책임의 경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준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 의사결정의 자유도이다. 개인이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었는지, 아니면 조직의 강한 압력이나 제한된 정보 속에서 움직였는지를 따져야 한다. 둘째,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상위 계층이 하위 계층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그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책임이 조직에 있다. 셋째, 예방 가능성이다. 조직이 사전에 충분한 교육이나 시스템을 갖추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조직에 돌아가야 한다. 이러한 기준은 독일의 ‘조직적 과실’ 이론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실제로 2023년 한 연구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52%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보 공유가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이는 조직 책임의 중요성을 뒷받침한다.
주의점: 책임의 분산과 회피의 함정
조직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책임을 완전히 대체해서는 안 된다. ‘조직이 시켰다’는 변명이 만능 면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어떤 조직이든 구성원 개인은 최소한의 윤리적 판단 능력을 유지해야 하며, 명백히 위법하거나 부당한 지시에 대해서는 저항할 의무도 있다고 본다. 또 다른 주의점은 책임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진실 규명보다 정치적·조직적 이해관계가 앞서는 경우이다. 이럴 때는 진정한 책임자가 가려지고, 대신 낮은 위치의 사람이나 시스템이 희생양이 되기 쉽다. 예를 들어, 2020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도 처음에는 개인에게 책임이 집중되었지만, 이후 조사에서 시스템적 실패가 드러났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책임 추궁이 진실 규명보다는 여론 달래기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임의 경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개인과 조직, 어느 한쪽에만 무게를 두기보다는 각 상황의 맥락을 꼼꼼히 따져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의 정의와 사회적 신뢰가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